▲ 이윤엽 作 '한라에서 백두_조국은 하나다'/자 32×26/목판/1990
백두에서 한라, 한라에서 백두로
詩 : 김정환
작곡 : 이현관
편곡 : 박정호
노래 : 노래패 참좋다, 미디연주곡, 노찾사(영상 포함)
죽은 자 무엇으로 남았는가
남의 유채 꽃 북의 진달래 흐드러져
이 땅에 흘린 피로 맺혀 있네
온 누리 온 몸 흔드는 함성
눈부신 노동과 투쟁의 열매로
아! 백두에서 한라, 한라에서 백두로
이 얼마나 참혹한 고통인가
남과 북의 원한 강물 져 흐를 때
우리들 해방의 나라로 가야 하네
온 누리 물불로 아름다운 세상
치욕인 산 울음인 산 떨쳐 일어나
아! 백두에서 한라, 한라에서 백두로
우리 해방의 나라 기억하리라.
산천초목 영원한 기쁨의 나라
온 누리 부활로 피어오르니
투쟁이 사랑으로 만나는 세상
투쟁이 영원으로 만나는 세상
아아. 통일의 땅에 우리 가리라
아아. 통일의 땅에 우리 가리라
아아. 통일의 땅에 우리 가리라
이 곡을 부른 가수들은 더 많이 있지만 여기서는 많이알려지지 않은'노래패 참좋다' 와 미디 연주곡, 가장 많이 알려진 노찾사의 노래와 영상만 올립니다. 밑에 이 곡의 원작자인 시인 김정환이 이야기 하는이 노래가 만들어 진 배경을함께 올립니다.
백두에서 한라, 한라에서 백두로 (이어듣기)
백두에서 한라, 한라에서 백두로 - 노래패 참좋다
백두에서 한라, 한라에서 백두로 - 미디연주곡
백두에서 한라, 한라에서 백두로 - 노찾사
▲ 이철수 作 '한반도'/천에 목판화/각 123×62cm/1984
대합창곡 <백두에서 한라, 한라에서백두로>
김정환(시인)
소설가 황석영은 처음 북한을 방문했을 때 만수대 남성합창단 수십 명이 자신을 위해 이 노래를 공연해주었는데, 그때 `황금 목소리`는 정말 집단적이라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다고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당시를 회상하곤 한다. `아름답고 감동적`은 만든 당사자로서 쑥스러운 형용사지만, `집단적`은 정곡을 찌른 지적이다.
이 노래가 만들어지던 1988년 초 작곡자 이현관(당시 서울대 학생, 현재 미국 음악 유학중이다)과 나는 <민중문화운동협의회>의 조직-결속력을 한 단계높인 <민중문화운동연합>(약칭 민문연)에서 일하고 있었다. 전두환 정권의 극한 군사독재가 86년 6.10 민주화대항쟁에 의해 한 풀 꺾이고 대통령 선거가 간선제에서 국민직선제로 바뀌고 집권 여당 총재 노태우가 `민주화`를 약속하는 등 기대와 열망, 그리고 경계와 불안이 교차하는 가운데 계속되던 `행진`이 87년 연말 대통령 선거에서 `재야 후보`가 김대중과 김영삼으로 2인화하고 노태우의 `민주화` 시늉에 중산층 다수가 체제 안정을 택하는 바람에 집권 군사독재 여당에 승리를 안기게 되자 커다란 멍울을 가슴에 간직한 채 끝난 다음 해 초였다.
`민문연` 사람들은 매달 1회 `민중문화의 날`이라는 제목의 대규모 공연집회를 열어 침체된 분위기를 문화적으로 일으키자고 의견을 모았다. 아니, 일으키는 정도가 아니라, 스스로 민중의 힘을 아름답고 힘차게 표출하자. 87년의 실패는 민중과 유리된 지식인과 정치가의 실패 아니겠는가. 스스로 힘을 모아가며 분위기를 이루고 대열을 이루고 세력을 이루고 역사의 발걸음을 이루는 것 아니겠는가…
그때 우리 생각은 그랬고, 그렇다면 무엇보다 새로운 노래, 군중을 하나로 묶을 뿐 아니라 군중이 하나되어 부르고, 부를 뿐 아니라 광활한 미래 전망의 일원임을 스스로 느끼게 만드는 노래가 필요했다. 사실, 노래마다 음폭이 다르고 그 만큼 포괄할 수 있는 `일원의 숫자`가 다르다. 딱히 숫자가 많은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아주 서정적이고 섬세한 노래는 집단이라는 격식 없이도 개인의 심금을 울리고 더 높은 미적 차원으로 고양시킨다. 하지만 여럿이 부르는 노래라면 `일원의 숫자`가 많을수록 노래와 집단성의 상호 작용이 원활해진다.
<애국가>는 100명이 고작이므로 당시 고등학교 조회 때 4-5백 명이 부르면 이미 숫자를 감당치 못하여 뭔가 억압적으로 느껴졌었다. 그 전에 박정희가 직접 작사 작곡했다는 <새마을 노래>는 10명 이상을 감당치 못한다. 월드컵 응원가 `오, 필승 코리아!`는 수백 수천만 명을 감당하지 않았냐고? 아니다. 수백 수천만 명을 평준화했을 뿐이다. <백두에서 한라, 한라에서 백두로>의 `가락`은 `미래 전장의 일원`들을 만 명 이상으로 혹은 무한대로(왜냐면,상호 작용하므로) 확대하고, 스스로 노래의 전망을 심화한다.
이 노래를 작곡할 당시 이현관은 몸무게가 50kg 미만에 눈빛은 예리한데 당장 끼니를 걱정할 정도라 얼굴은 영양실조로 시커맸고 학비를 선배(들)에게 도움받았고 학교 앞 사회과학 서점에서 `운동 교과서`를 슬쩍하다가 한참 동안 벌을 서기도 했으나 거의 일주일 동안 방에(혹시 강제로) 틀어박힌 채 제1회 민중문화의 날 `행사용`으로 그가 써낸 <백두에서 한라, 한라에서 백두로>는 연세대 노천 극장에 모인 7천여 군중을 대번에 사로잡았다. 당시만 해도 `불법` 집회라 대학 수위 아저씨들이 전선을 끊었는지 공연행사는 시작되자마자 마이크가 멈추었고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관중들은 <애국가>를 부르며 전기가 다시 들어오기를 기다리다가 이 노래를 듣고 정말 `전망의 일원`이 되었던 것이다. 이 노래, 그리고 김형수가 작곡한 <선언> 등은 `민중문화의 날` 행사 참석자를 2만, 3만으로 늘려갔을 뿐 아니라 80년대 말 90년대 초 운동권 대다수를 전망의 일원으로 만들었다. 가사는 따로 쓴 것이 아니고, 나의 시를 그가 노래에 맞게 뽑고 다듬었으니, 나는 별로 한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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